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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나의 전문성을 재설계하는 법 (하용호)

목차

  1. 개요
  2. AX를 도입한 회사가 지나는 다섯 단계
  3. AI 시대의 3대 부채
  4. 부채를 갚는 방법: 검증과 암묵지 캡처
  5. AI 시대에 필요한 사람
  6. 그럼에도 전문성은 필요한가
  7. 결론
  8. Reference

개요

이 글은 하용호님이 2026년 6월 11일 밋업에서 발표한 “AI 시대, 나의 전문성을 재설계하는 법” 강연 자료를 정리한 것이다. 발표자는 데이터사이언티스트 출신으로 두 번의 엑싯을 거쳤고, 현재 데이블 CDO, 데이터오븐 컨설팅, 국가AI전략위원회 등 여러 일을 동시에 하고 있다. 강연의 핵심 질문은 하나다. AI가 손발을 다 해주는 시대에, 개인과 조직은 어떻게 변해야 하고 전문성은 어디에 남는가.

AX를 도입한 회사가 지나는 다섯 단계

환호에서 의구심까지

발표자는 많은 회사가 AI 전환(AX)에서 비슷한 단계와 고통을 겪는다고 말한다. 마치 환자가 병을 받아들일 때 부정에서 수용으로 가는 과정과 닮았다.

단계이름특징
Stage 1환호의 시기전사 도입, 외부 교육, 사내 AX팀 신설
Stage 2정체의 시기계정은 줬는데 안 쓴다, 특히 비개발자가 안 쓴다
Stage 3신남의 시기사내 시스템 연결과 해커톤으로 사용량 급증
Stage 4의구심의 시기분명 뭔가 하는데 기대만큼 빨라지지 않는다
Stage 5마지막 고비파이프라인 재설계와 ROI 검증

정체의 시기는 입력과 출력의 연결 문제에서 온다. 우리 팀 프로젝트의 세세한 내용을 매번 입력으로 넣기 어렵고, AI가 내놓은 결과를 다시 사내 시스템에 복붙해야 하기 때문이다. 신남의 시기에는 토큰을 더 많이 쓰도록 독려하는 토큰 맥싱(token maxxing)이 나타난다. 출력 증가는 측정이 어렵고 오래 걸리지만, 입력인 토큰 사용량은 경영진이 처음 만나는 직관적이고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후기에는 성과 없는 흥청망청 토큰 사용에 놀라 비용 통제로 돌아서게 된다.

AI J커브 트랩

발표의 핵심은 Stage 4, 의구심의 시기다. 구글의 DORA 리포트가 보여주듯, AX 중에 한 번 구덩이에 빠졌다 나오는 패턴이 관찰된다. AI를 붙인다고 바로 일을 잘하는 게 아니라, 개인과 조직이 적응하는 구덩이를 지나야 이륙이 가능하다. 이 구덩이를 만드는 대표적인 요인이 Verification Tax다. 도입 전에는 “딸깍”이면 끝날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AI가 일을 제대로 했는지 검증하고 확신하는 데 엄청난 시간이 든다.

AI 시대의 3대 부채

기술부채 인지부채 의도부채

발표자는 마틴 파울러의 글을 인용하며 AI 시대의 세 가지 부채를 제시한다.

부채정의
기술부채만든 산출물의 양에 묻혀 다음 작업이 더뎌지는 것
인지부채만든 결과물을 내가 이해할 수도 확신할 수도 없는 것
의도부채왜 이렇게 만들어졌는지 다시는 알 수 없는 것

기술부채는 익숙하다. 다만 AI가 만드는 코드는 국소 최적화, 전역 무지의 특징이 있다. 당장의 프롬프트 지시에는 충실하지만 회사 전체의 틀을 존중하지 않고, 중복과 우회가 남발된다. 게다가 AI가 만드는 부채는 그럴싸하다. 뻔한 버그는 만들지 않아 작은 모듈 단위 테스트는 통과하지만, 운영 환경에서 전체를 연결하면 깨진다.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별도 대처가 없을 경우 5개월에서 19개월 안에 회사의 속도가 오히려 나빠질 수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인지부채다. LLM이 코드와 문서를 쏟아내면서, 사람들이 그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유통하고 배포하는 현상이다. 카파시의 말처럼 thinking은 아웃소스해도 understanding은 못 하는데, 사람들이 understanding마저 항복해 버린다. “너의 딸깍에서 나의 딸깍으로” 결과물이 검토 없이 넘어가는 인지적 항복(cognitive surrender)이 일어난다.

의도부채는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어떤 제약과 트레이드오프가 있었는지”가 휘발되는 것이다. 예전에는 팀이 회의하고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맥락이 자연스럽게 타인의 머릿속에 백업되었다. 하지만 한 사람이 에이전트들과 홀로 일하게 되면, 그의 의도와 고민은 휘발될 프롬프트에만 남는다. 실제로 의도와 암묵지를 사람 머릿속에만 두고 인력을 해고했던 회사들이, 같은 직원을 더 높은 연봉에 재채용하는 사례가 다수 발생했다.

부채를 갚는 방법: 검증과 암묵지 캡처

생산에서 검증으로

발표자는 부채들이 하나씩 격파되기보다 복합적으로 해결된다고 본다. 핵심 처방은 사람의 메인 작업을 생산에서 검증으로 바꾸는 것이다. 다만 AI가 쏟아내는 모든 것을 검증하려 하면 지친다. 따라서 중간 산출물은 흘려보내고 최종 결과물에 검증 레이어를 집중한다. 가능한 모든 것을 자동화하되(Test Code, Profiling, LLM as Judge), 꼭 필요한 곳에만 사람의 컨펌(Human in the loop)을 둔다.

검증 레이어는 세 가지로 구성된다.

종류예시
Binary Checks통과 실패로 구분되는 테스트 케이스, 가장 만들기 쉽고 다수를 차지
Quantitative Metrics초당 처리량, 지연 시간 같은 숫자 점수
Qualitative Rubrics직관적 동선인가 같은 정성 기준, LLM as a judge로 1에서 5 척도 평가

발표자는 “오리처럼 생기고, 헤엄치고, 날고, 울고, 알을 낳으면 오리라고 믿으면 된다”고 비유한다. AI가 만든 결과물이라도 사람이 세밀하게 정해둔 수백 개의 검증 레이어를 통과한다면 믿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클로드코드 소스 유출 사건 이후, 잘 정리된 A급 코드가 필요했던 이유는 인간의 인지 공간 크기에 맞추기 위해서였고, AI가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면 C, D급 코드라도 결과만 잘 내면 된다는 인식 변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검증은 항상 별개의 에이전트 인스턴스로 해야 한다는 팁도 덧붙인다. LLM은 자신이 말하던 것을 옹호하는 특징이 있어, 같은 세션에서 검증을 시키면 일부만 잡아내기 때문이다.

암묵지를 자동으로 누적하기

의도부채의 근원은 문서화되지 않은 암묵지다. 암묵지는 내가 알지만 내가 안다는 사실을 모르는 지식이라, 누군가 물어봐야 비로소 드러난다. 그렇다면 AI가 적극적으로 물어보게 하고, 그 답을 문서로 남기면 된다. 발표자는 matt-pocock의 grill-me 스킬을 예로 든다. plan 모드의 계획에 대해 AI가 집요하게 한 번에 하나씩 질문하고, 각 질문마다 추천 답변을 함께 제시하며, 코드베이스로 답할 수 있는 건 직접 확인하게 하는 방식이다. 질문자는 사람이 아니라 AI이고, 사람은 검증자이자 조언자가 된다.

이를 조직 차원으로 확장하면 Company-wide 메모리가 된다. 여러 부서의 에이전트가 같은 시행착오를 중복해서 겪지 않도록, 회사 차원의 공통 메모리에 프롬프트와 시행착오 극복 기록을 지속적으로 학습시킨다. 법률 AI Harvey는 이런 체계로 기존 대비 6배의 벤치마크 상승을 확보했다고 한다. 발표자 본인도 구독제 클로드코드 위에 레이어를 얹어 만든 전용 에이전트와 개인 메모리 시스템을 쓰고 있으며, 자신의 페르소나를 추출해 평균에 수렴하지 않는 답을 얻는다고 소개한다.

AI 시대에 필요한 사람

발표자는 좋은 롤모델이 의외로 가까이 있다고 말한다. 바로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나보다 개발도, 마케팅도, 디자인도, 회계도 잘하지 못하지만, 업무를 지켜보고 지시를 내리며 회사를 이끈다. 이제 AI가 우리보다 개발과 마케팅과 디자인을 잘하게 되었으니, 우리는 그 AI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사장님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일의 시작과 끝을 책임지는 사람은 다음 세 가지를 한다.

역할설명
문제를 쪼개는 사람거대한 문제를 AI든 사람이든 맡길 수 있는 수십 개로 분해
실패를 빠르게 판별하는 사람잘못된 방향을 초장에 잡고 교정 방법을 찾음
일이 되게 하는 구조를 찾는 사람여러 에이전트의 관계 구조를 잘 잡아 망할 일도 되게 만듦

이를 한마디로 하면 “애매한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능력”이다. 여기에 더해 AI 시대에 유달리 중요해지는 강점들이 있다. 첫째, 빠른 맥락 파악 능력이다. 판단 빈도가 올라가고 맥락 파악 비용도 올라가면서, 이것이 새로운 핵심 기본기가 된다. 둘째, mind-sized bites 변환력이다. 1시간짜리를 10분 만에 이해되게 rewrite하고, 내 인지부하를 적게 일으키는 방식으로 재조직하는 능력이다. 셋째, 어그로력(마케팅력)이다. 비슷한 제품 수백 개가 쏟아지는 시대에 간택받으려면, 악플보다 무플이 무서운 시대의 스타성이 필요하다. 넷째, 명확한 취향(taste)이다. 더하는 비용이 0으로 수렴하는 시대에 “무엇을 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빼기의 능력이 곧 취향의 발현이다. AI 시대의 가장 흔한 실수는 빠르게 만들 수 있으니 다 만드는 것이고, 그 결과 feature creep으로 스스로 무너진다.

그럼에도 전문성은 필요한가

발표자는 겔만 암네시아 효과를 든다. 신문에서 내 전문 분야 기사를 읽으면 오류투성이가 보이는데, 비전문 분야 기사는 정확할 거라 믿는 망각 현상이다. 신문이 LLM으로 매체만 바뀌었을 뿐 같은 편향이 존재한다. AI 결과가 그럴싸해 보였던 것 중 일부는 우리가 비전문가였기 때문일 수 있다. 즉 그럴듯한 가짜를 걸러내고 진짜를 확신하려면, 그 분야의 전문가만이 가장 타당한 검증 레이어를 만들 수 있다. 또한 쉬운 결정은 AI가 다 하고 나면, 사람에게는 가치 대 가치의 어려운 트레이드오프만 올라온다. 전문가는 10분 만에 쟁점을 파악하고, 비전문가는 있어야 할 것이 없는 부존재를 눈치채지 못한다. 무엇보다 책임이 따르는 결정은 인간의 몫이다. 완전 자율 AI 식당이라도 길 가는 6살에게 책임을 맡길 수 없듯, 현재 AI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주체가 아니다.

발표자가 내리는 전문가의 새 정의는 다음과 같다. 자신의 도메인의 AI를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 풀고 싶은 문제와 결과를 세심하게 정의하고, 만드는 단계와 운영 단계의 검증 레이어를 구축하고 유지보수하는 사람. 각 단계의 선택을 위해 도메인 taste를 발휘하고, 책임이 따르는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책임지는 사람. 한마디로 스킬의 숙련자에서 운영의 책임자로 이동하는 것이다.

결론

이 강연은 AI 도입의 환호와 실망을 모두 겪은 조직의 현실에서 출발한다. 기술부채, 인지부채, 의도부채라는 세 가지 부채가 AX의 구덩이를 만들고, 그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길은 사람의 일을 생산에서 검증으로 옮기고 암묵지를 자동으로 누적하는 것이다. AI 시대의 인재는 문제를 쪼개고 실패를 판별하고 구조를 찾는, 애매한 상황에서 답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럴듯한 가짜를 걸러내고 책임을 지는 일은 여전히 전문가의 몫으로 남는다. 옳은 가치 판단, 지지받는 취향, 납득되는 책임. AI 시대에도 사람의 일은 이 세 가지로 남아 있다.

Reference